PM이 없는 프로젝트의 결말 — 그리고 1인 회사엔 PM만 없는 게 아닙니다
PM이 없는 프로젝트는 게을러서 망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결정하지 않고, 멈춘 것이 보이지 않아서 무너집니다. 18년간 본 그 붕괴 순서와, 혼자 회사를 굴릴 때 벌어지는 같은 일.


PM이 없는 프로젝트는 어떻게 끝날까요.
폭발하듯 망하지 않습니다. 조용히, 예측 가능한 순서로 무너집니다. 18년 동안 여러 현장에서 거의 같은 순서를 봤습니다.
붕괴는 항상 같은 순서입니다
1단계 — 아무도 "그건 안 합니다"를 말하지 않습니다. 요구사항이 들어오면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그건 가능은 하죠"라고 답합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다만 전체를 놓고 "그걸 넣으면 무엇을 뺄지"를 말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빠지지 않고 계속 붙습니다.
2단계 — 각자 자기 구간만 맞습니다. 디자인은 디자인대로 맞고, 서버는 서버대로 맞고, 앱은 앱대로 맞습니다. 그런데 셋을 붙이면 안 맞습니다. 각 구간은 아무도 틀리지 않았기 때문에, 이 문제는 붙여보기 전까지 존재하지 않습니다.
3단계 — 멈춘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게 가장 비쌉니다. 누군가 답을 기다리는 상태로 사흘이 지나도, 그 사흘은 아무 데도 기록되지 않습니다. "진행 중"이라는 말은 일하고 있다는 뜻일 수도, 멈춰서 기다리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는데 둘이 구분되지 않습니다.
4단계 — 마지막에 전부 몰립니다. 그리고 그때서야 "일정이 밀렸다"고 말합니다. 사실 밀린 건 마지막 주가 아니라, 아무도 안 보던 그 사흘들이 쌓인 겁니다.
PM이 하는 일은 일정 관리가 아닙니다
이 순서를 보면 PM이 실제로 뭘 막고 있었는지가 드러납니다. 일정표를 예쁘게 그리는 게 아닙니다.
- 결정을 강제합니다. 미뤄진 결정을 오늘 안에 끝내게 만듭니다.
- 멈춘 것을 드러냅니다. "진행 중"을 "무엇을 기다리는 중"으로 바꿔 말하게 합니다.
- 전체를 봅니다. 각자 맞는 것들이 합쳐졌을 때 안 맞는 지점을 미리 찾습니다.
그래서 PM이 없는 프로젝트는 게을러서 실패하는 게 아닙니다. 다들 성실하게 일하는데도, 이 세 가지를 아무도 담당하지 않아서 실패합니다. 자리가 비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원인입니다.
그런데 혼자 회사를 굴리면, 비어 있는 자리가 PM만이 아닙니다
여기까지는 팀이 있는 프로젝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저는 요즘 이 구조를 훨씬 더 자주 다른 곳에서 봅니다. 1인·소규모 사업자입니다.
혼자 회사를 하면 PM만 없는 게 아닙니다. 운영을 보는 사람도, 돈과 기한을 챙기는 사람도, 알리는 일을 담당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흔히 "대표가 다 겸한다"고 표현하지만, 정직하게 말하면 겸하는 게 아니라 비어 있습니다. 겸직은 시간을 나눠 쓴다는 뜻인데,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급한 것 하나만 처리되고 나머지 자리는 그냥 아무도 안 앉아 있는 상태로 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증상도 프로젝트와 똑같습니다. 결정이 미뤄져도 아무도 재촉하지 않고, 멈춘 일이 몇 주째 멈춰 있어도 그걸 알려주는 사람이 없고, 기한은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됩니다. 혼자라서 덜 무너지는 게 아니라, 무너지는 걸 알려줄 사람이 없어서 늦게 알 뿐입니다.
사람을 못 늘릴 때, 그 자리는 어떻게 채우나
지난 글에서 AI로 여러 개를 동시에 굴려도 결국 사람이 필요하더라는 이야기를 썼습니다. 그럼 당장 사람을 못 늘리는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남습니다.
제가 내린 답은 이렇습니다. 역할을 채운다는 건 사람을 뽑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닙니다. 위의 세 가지 중 두 가지는 사실 판단이 아니라 감지입니다.
- 멈춘 것을 드러내는 일 — 이건 규칙으로 됩니다. 며칠째 안 움직였는지는 사람이 안 봐도 알 수 있습니다.
- 기한을 놓치지 않는 일 — 이것도 규칙으로 됩니다. 날짜는 판단이 필요 없습니다.
- 그리고 결정 — 이건 끝까지 사람의 몫입니다. 무엇을 포기할지는 위임되지 않습니다.
혼자 일할 때 실제로 사람을 잡아먹는 건 세 번째가 아니라 앞의 두 개입니다. 결정 자체는 몇 분이면 끝나는데, 결정해야 할 것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까지가 몇 주씩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 발견을 시스템에 넘기면, 남은 자리에 앉아야 하는 사람은 한 명으로도 됩니다.
PM이 없는 프로젝트가 무너지는 이유는 능력 부족이 아니라 빈자리였습니다. 혼자 회사를 굴리는 일도 똑같습니다. 다만 그 빈자리를 전부 사람으로만 채워야 한다고 생각하면, 사람을 못 뽑는 동안은 방법이 없어집니다.
감지는 넘기고, 결정만 남기는 것. 그게 지금 제가 찾은 답입니다.
